[전북의 명인을 만나다 - 41 변경환 배첩장]50년 배첩의 길 앞으로도 이어 나가겠습니다 - 전북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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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6호. 2018.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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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명인을 만나다 - 41 변경환 배첩장]50년 배첩의 길 앞으로도 이어 나가겠습니다
자동차 정비업체와 벽돌공장 거쳐 시작
풀이 가장 중요한 요소…좋은 재료 고수
궁중 배첩 연구 지속하며 제자 양성할 것
[1486호] 2018년 10월 17일 (수) 17:33:31 전북대신문 press@jbnu.ac.kr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는가. 꿈을 향해 발을 딛는 것이 두려운가.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전북대신문이 다양한 분야의 멘토들을 만나봤다. 자신이 정한 길에 한 치의 의심도 품지 않고 담담히 역량을 키워나가 결국은 ‘명인’의 칭호를 얻은 사람들이 바로 그 주인공. 전북대신문에서 그들의 삶과 열정을 전하려 한다. <엮은이 밝힘>

한지는 한국 고유의 기법으로 만들어낸 종이를 일컫는다. 한지의 우수성을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기에 그 수명은 마냥 길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다른 종이에 비해 가볍고 기름이나 먹물을 잘 빨아들여 글을 쓰거나 그림 그리기 좋고 오래가는 것은 맞다. 그러나 한지에 무한한 생명을 불어 넣는 것은 바로 배첩이다. 역사를 써내려가는 작업이 한창인 한옥마을의 한 공방에서 변경환(72) 명인을 만났다.

▲50년 배첩 외길을 걸어오다
현재까지 수백,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서화가 온전히 전해져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배첩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서화를 감상하고 보관하기 위해 두루마리나 족자, 병풍, 책, 첩 등의 다양한 형태로 꾸미는 것을 말한다. 대개 바탕이 되는 것은 종이와 비단인데 잘 구겨지거나 찢어져 각종 벌레와 쥐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습기나 곰팡이도 서화를 손상시키는 원인 중 하나다.


이러한 물리적 단점을 보완하고 작품을 장기간 보존해 예술적 가치를 드높이기 위해 배첩이 시작됐다. 흔히 쓰이는 표구는 일본식 표현이고 중국에서는 장황이라고 불린다. 중국에서 들어온 장황이 우리나라에서 배첩이 됐다.


이러한 배첩이 변 명인의 평생직업이 될 줄은 그 역시 꿈에도 몰랐다. 국민학교 졸업 후 자동차 정비업체에서 일을 시작한 명인은 지독한 기름 냄새를 버티지 못하고 벽돌공장으로 이직했다. 벽돌을 굽던 변 명인이 배첩을 처음 만난 것은 18살 때였다. 그는 “형님 손에 이끌려간 곳은 다름 아닌 서재일 선생의 다가산방이었다”며 “즐비해 있는 병풍과 열정으로 가득 차 배첩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금세 매료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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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에 좌지우지 되는 작품 의뢰
1970년대에 배첩의 호황이 시작돼 90년대까지도 이어졌다. 일감이 너무 많아 잠잘 시간도 부족했다. 새벽 4시까지 일하다 해 뜨는 것을 보며 잠들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러한 생활도 오래 지나지 않아 막을 내렸다.
“모든 예술이 생활의 여유가 있을 때 사람들이 찾아. 점점 동양화가 지고 서양화의 시대로 변한 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외환위기도 왔어.”


명인의 말처럼 서양화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서화가 침체됐고 비슷한 시기 발생한 외환위기로 표구를 찾는 이들이 드물어졌다. 경기가 좋으면 일이 많았고 그 반대일 때도 있었다. 가계 사정에 따라 영향이 컸다.

▲배첩 통해 문화재 복원도 이뤄져
배첩은 손상되고 훼손된 서화를 보존하고 복원해 다시 되살리는 것까지도 포함한다. 보관 방법이 잘못돼 곰팡이가 피거나 찢어진 서화를 재배첩 해 본래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다.


그의 손끝에서는 그동안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문화재 복원이 이뤄졌다. 특히 1806년에 탁본된 것으로 추정되는 황산대첩비지를 199년 만에 복원한 것이 큰 성과였다. 황산대첩비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에 의해 비문이 크게 훼손돼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으나 변 명인의 노력으로 세상에 다시 등장하게 됐다.


“길이 56m에 달하는 오백나한상 복원 작업이 돌고 돌아 내게 왔지. 크기가 어찌나 까마득하던지 학교를 빌려 복도에서 복원작업을 했었어. 아직도 그 작품이 내 기억에 남아.”


그의 기억에 깊이 남은 오백나한상을 비롯해 황산대첩비지, 광개토대왕비, 천인천자문 등과 같은 대작들은 지난 2006년 대한민국 대한명인전을 통해 한국국제전시장(KINTEX)에서 선보였다.


이후 변 명인은 지난 2008년 한국전통문화학교 전통문화연수원의 제 1회 ‘문화재 수리‧복원 전문인 양성 과정’을 마치기도 했다. 더 뜻깊은 문화재를 복원하고자 배움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품질 높은 재료를 고수하다
배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풀이다. 그는 작업에 필요한 풀을 직접 쑨다. 그가 사용하는 풀은 3년 이상 묵은 풀이다. 서화의 종류에 따라 풀의 달리 사용해야 한다. 자연의 경치가 담긴 산수화는 물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풀을 너무 얇게 바르면 떠버려서 여러 번 덧칠을 해야 한다. 산수화나 서예는 그 반대다.

풀 외에도 비단이나 한지 등 모든 재료를 직접 구매한다. 한지의 경우는 직접 염색하기도 한다. 이렇게 좋은 재료에 대한 집념은 훌륭한 작품을 위한 기초라는 것이 명인의 설명이다. 그의 손놀림에 따라 커다란 판 위에 붙어 있는 한지가 북 소리를 내며 뜯어져 나온다. 그 한지에는 한자가 적혀 있기도 하고 사군자가 그려져 있기도 한다. 당시의 정성과 시간이 담긴 작품들은 백 명인에 의해 다시 역사의 흐름 속으로 들어간다.

▲연구에 대한 열정, 제자에게 전해주고파
열정이 넘치던 소년은 어느새 배첩과 함께 한지 50년이 지나 주름졌지만 종이를 덧대 세월의 풍파를 이겨온 그의 작품은 바랜 곳이 없다. 변 명인은 오늘도 궁중에서 사용한 배첩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그의 꿈은 배첩의 기원이 되는 장황을 발전시키고 제자들에게 계승하는 것이다.


어느덧 그의 꿈은 아들의 것이 됐다. 장황문화재연구원을 통해 아들과 아내를 비롯해 며느리까지 온 가족이 배첩을 지키는 것에 힘쓰고 있다.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신념과 기술을 전해주고 싶다는 백 명인의 바람처럼 전국에 그의 정신이 뿌리내리고 있다.


임다연 기자 imdayeon@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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