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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6호. 2018.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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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명인을 만나다 - 40 가야금 병창 박애숙 명인] 늦게 다시 만난 국악, 배우고 가르칠 수 있어 행복해요
국악원 따라 나선길 우연히 소리 매력에 흠뻑
가족 반대로 뒤늦게 시작했지만 기쁨은 두배
건강 챙겨 가야금 병창 잇는 제자 양성할 것
[1485호] 2018년 10월 10일 (수) 17:20:51 전북대신문 press@jbnu.ac.kr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는가. 꿈을 향해 발을 딛는 것이 두려운가.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전북대신문이 다양한 분야의 멘토들을 만나봤다. 자신이 정한 길에 한 치의 의심도 품지 않고 담담히 역량을 키워나가 결국은 ‘명인’의 칭호를 얻은 사람들이 바로 그 주인공. 전북대신문에서 그들의 삶과 열정을 전하려 한다. <엮은이 밝힘>

▲ 끼가 넘쳤던 소녀, 국악소리에 반하다
“국악을 만나고 시작하고 하고 있는 지금도, 국악이 무척 좋아요. 건강이 허락되는 한 언제까지라도 할 것입니다.” 인터뷰 내내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 49호 가야금병창 보유자 박애숙 명인은 국악에 대한 사랑을 시시때때로 표현했다. 국악과 함께한 세월이 벌써 수십 년이지만 박애숙 명인은 국악만 생각하면 소녀시절 그때로 돌아간 듯 설레고 긴장된다.


지인을 따라 국악원으로 산책을 나선 길, 그것이 박 명인과 국악의 첫 만남이었다. 국악원에서 흘러나오는 국악 소리가 박 명인의 마음이 울렸다. 박 명인의 머릿속에는 온통 소리로 가득 찼다. 그녀는 “지금이야 국악이 좋은 줄 알지만, 철없던 그때도 소리가 너무 좋아 배우고 싶다는 생각만이 간절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다 10대 시절 판소리를 시작으로 국악의 세계에 들어섰다. 이후 가야금, 승무, 창극, 사물, 민요 등의 많은 국악을 자연스레 접하게 됐다.

▲ 평탄할리 없는 국악인의 길
처음에는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지만 박 명인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은 국악을 놓칠 수 없었다. 박애숙 명인의 간절한 소망과 끈질긴 설득 끝에 그녀는 국악을 배울 수 있었다.


가야금 병창 보유자 박애숙 명인은 소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곧잘 끼를 타고났다는 칭찬을 들었다. “어린 마음에 이것도 배워보고 저것도 배워보고 싶었다”는 박 명인은 “예술에 끼가 있다는 칭찬을 들으니 부모님께 혼나면서도 국악을 더 열심히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넘치는 끼를 모두 선보이지 못한 채 박 명인은 교직에 있는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됐다. 결혼을 하면서 박 명인은 가정에 충실했다. 살림을 하며 평소와 같은 나날을 지내다가도 가야금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면 다시 설렜다. 여러 줄이 만들어내는 선율에 몸을 싣고 그에 맞는 노래를 부르며 음악과 하나 되는 자신을 상상했다. “남편의 직장 때문에 시외로 이사를 자주 하게 됐다. 이사를 하면서 어릴 때 배웠던 오래된 가야금을 늘 가지고 다녔는데 국악 소리를 듣기만 하면 가야금을 그렇게 하고 싶었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국악을 다시 하는 것에 대해 그리 쉽게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남편의 근무지가 전주로 바뀌면서 소리를 취미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됐다. 박 명인은 “남편이 수영, 등산 등 다른 취미도 있는데 왜 하필 국악이냐고 그러더라. 전주로 나오면서 시어머님도 모시고 가야금도 배우기로 했다”며 당시를 회상하며 설레 했다.
   

▲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
남편에게 반승낙을 받고 도립 국악원으로 향한 박 명인은 어릴 적 스승이었던 가야금 산조 및 병창 국가무형문화재 23호 강정열 선생을 만났다.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다시 찾은 제자를 스승은 두 팔 벌려 반갑게 맞이해 줬다. “취미로 배우기 위해 도립 국악원으로 향했다”던 박 명인에게 강정열 선생은 “타고난 게 있고, 어릴 적 밑바탕을 배워 충분히 전공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애숙 명인은 “긴 시간 가야금을 하지 않았는데 신기하게 조금 배우니 어릴 때 배우던 것이 기억나더라”고 덧붙였다.


늦게 핀 꽃이 아름답다고 했던가. 뒤늦게 다시 시작한 국악이라 설렘 반, 걱정 반이었으나 박 명인의 국악에 대한 사랑과 노력, 능력 등을 국악계서 인정해 주기 시작했다. 가야금을 다시 시작한지 6개월 만에 강정열 선생 밑에서 조교로 일하게 됐고 그러면서 박 명인은 더욱 부지런히 살림과 연습을 병행했다.

2년의 시간이 흘러 박 명인은 전주 대사습놀이에 도전했다. 그는 “그 때 선생님께 10번 떨어져도 괜찮으니 목표를 가지고 나가겠다고 말했다”고 말했다. 매번 목표를 그리며 한걸음 앞으로 나아간 박 명인은 첫 대회에서 4등, 두 번째 대회에서 2등 그리고 1998년이었던 3년 만에 가야금 병창 장원을 수상했다. 장원 수상 이후에도 지난 2001년 김해에서 열린 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단순히 소리를 잘하거나 가야금 산조를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두 가지를 모두 뛰어나므로 가야금 병창으로서 인정받았다.

▲ 감동의 첫 발표회…가야금 병창 맥 이을 것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49호 가야금병창 보유자 박 명인은 1년에 여러 차례 발표회를 열어 제자들과 함께 또는 단독으로 관객들에게 가야금 병창을 선보인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첫 발표회다. 박 명인에게 제 1회 발표회는 그야말로 감동과 감사의 무대였다. 명인이 된 후 처음으로 펼치는 무대였지만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대통령상을 수상했을 때보다 더 기뻤다”는 박 명인은 “서울에서, 충청도에서 등 멀리서부터 내 공연을 찾아준 것이 감사했다. 예술 고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은 자리가 없어 무대 밖 모니터로 보고 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여는 첫 발표회인지라 박 명인은 이를 위해 많은 시간 연습에 매진했다.


박 명인은 장원을 수상한 다음해 3월부터 가야금 병창을 제자들에게 전수하기 위해 개인 연습실을 마련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제자 양성에 힘쓰고 있다. 가야금 병창은 다른 과에 비해 더 어렵다고 느낄 수 있다. 가야금도 다룰 줄 알아야 되고 소리도 할 줄 알아야 되기 때문이다.


스승을 따라 가야금 병창을 잇는 제자를 한명이라도 양성하는 것이 목표인 박 명인은 제자들이 대회에 나가서 좋은 상들을 받아오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아무리 힘든 때에도 힘든 줄을 모르겠다. 잘 배우고 잘 받아들이는 제자들이 대회에 나가 실력적으로 잘 되면 너무 기쁘다.”


박 명인은 앞으로도 계속 제자들을 양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건강관리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처음 국악원에 갔을 때는 재미로 해봐야지 했다. 재미를 알았으니 지금은 의무적으로 건강을 지키면서 더 열심히 제자들을 양성할 생각이다.”


박애숙 명인은 국악과가 점점 없어지는 현실이 무척 안타깝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출강했던 우석대에서도 국악과가 없어졌다. 우리학교에는 국악과가 있기는 하지만 가야금 병창 전공은 없다. 때문에 박 명인의 제자들은 대학을 진학할 때 우리지역을 떠나게 된다. 우리 음악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박 명인은 후배들에게 “우리 음악을 살려 전통의 맥을 이어갔으면”하는 바람을 전했다.

서도경 기자 dgseo611@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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