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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NU 교양 100선 읽기프로젝트 ⑫삐에르 부르디외 ‘부르디외’
문학으로 다양한 일상 속 문화 ‘구별짓기’
[1480호] 2018년 05월 16일 (수) 13:45:16 전북대신문 press@jbnu.ac.kr

   

▲ 갈등의 경험에서 인류사회학 관심으로
부르디외는 1930년 8월 1일 스페인 국경에 인접한 서남 프랑스의 아주 작은 외딴 마을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때문에 사투리와 시골 출신 등으로 유학 시절 많은 어려움과 갈등을 겪었다. 그는 그 갈등이 왜 생기는 것이며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에 대해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대학 교육이 요구하는 기준 ․ 틀 ․ 수준 등은 부르디외가 그 동안 지니고 있었던 그것과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대학이라는 ‘상징적 가치’가 자신의 환경과 경험을 통해 터득하고 지니고 있던 그의 모든 것보다 우월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또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온갖 촌스러움을 내던짐으로써만 대학에서 적응할 수 있었다. 그가 대학에서 인류학과 사회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 데에는 이런 개인적 경험의 영향이 다분히 작용했다. 우리가 흔히 ‘콤플렉스’로 해석하는 이런 상황을 부르디외는 대학이라는 사회 기구가 개인에 대해 ‘상징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 계급별 문화로 본 문화적 자본
관련 연구를 계속해 오던 부르디외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현상 및 취향, 사회현상 등을 통계를 통해 과학적으로 분석하고자 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화’이다. 부르디외는 이 책에서 설문 통계를 통해 각 계급별 문화에 대한 태도를 밝혔다. 이와 관련된 첫 번째 조사는 1963년이다. 이어 1967~1978년에 1,200명을 대상으로 2차 조사를 했는데, 조사 대상자는 사회적 ․ 지리적 대표성에 따라 선발됐다. 부르디외는 수많은 질문들을 25개 항목으로 나눠 영화, 음악, 옷을 입는 스타일, 실내장식, 요리, 스포츠, 휴가지 등과 관련된 선호도를 조사했다. 독자들은 1960년대에 진행된 조사의 결과가 현재에도 많은 부분에서 유효하다는 사실에 매우 놀랄 것이다.


설문결과 지배계급은 음악이나 미술에서 대중적인 취향보다 결과적으로 대중적이지 않은 작품들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 보다는 ‘피아노 평균율’이나 ‘푸가의 기법’과 같이 가장 순수한 미학적 성향을 요구하는 작품들을 선호하였다. 추상화에 관심을 보이며 현대 미술관에 자주 출입하고 자신의 동료가 예술가이길 바라는 성향이 강했다.


중간계급은 지배계급의 문화에 대한 외경으로 가득 차 있다. 자신에게 본질적으로 낯선 문화에 통합되기 위해 투쟁하며 지배계급의 문화처럼 보이는 모든 것에 순종한다. 과거의 귀족적 전통을 무비판적으로 존경하는 이러한 외경심에는 욕구와 불안이 뒤섞여있다. 중간계급은 오페레타를 ‘고상한 음악’으로, 모조품을 진품으로 취급하게 된다. 중간계급은 ‘모조품’을 소비하면서 “이것은 더 싸면서도 같은 효과를 낸다”고 믿는다. 중간계급은 연극, 문학의 고전작품을 영화로 각색한 것, 고전음악을 대중적으로 편곡하거나 대중가곡의 클래식풍 관현악용 편곡 등을 향유한다. 중간계급의 이와 같은 문화적 향유를 위해 중간문화의 생산자들 또는 문화매개자들(TV나 라디오의 교양프로그램 담당자, ‘고급’신문과 주간지에 기고하는 비평가나 작가적 저널리스트 등)이 발생한다.


민중계급은 ‘필요한 것’을 향유한다. 민중계급은 대체적으로 실용적인 옷을 좋아하며 단정하고 유지하기 쉬운 실내장식을 선호한다. 프랑스에서 전형적으로 부르주아 및 여성음료인 차의 경우 상급관리직이 27%, 생산직 노동자 3%, 농업노동자가 0% 향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취향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것이 문화적 자본이다. 문화적 자본은 개인으로 하여금 과학적 정보와 심미적 즐거움, 일상적 쾌락의 사회적 잠재력을 다루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능력과 기술을 가리킨다.

 교육적 자본은 문화적 자본의 일부이다. 위의 통계에서 알 수 있듯 문화적 자본은 자기도 모른 사이에 몸에 배는 것이기 때문에 세습될 가능성이 높다. 부르디외는 이 과정에서 중상류층 사람들이 대중적 취향과 구별해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에 우월한 문화적 가치를 부여하고자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를 ‘구별짓기’라 명명했다.


▲ 부르디외와 ‘구별짓기’ 이해를 위한 주요 개념들
부르디외와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요 개념 습득이 필수이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구별짓기(distinction)’는 기본적으로 함축하는 의미는 남들로부터 자신을 구별하여 두드러지게 하는 것이 계급분화와 계급구조를 유지하는 기본원리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부르디외의 저서마다 ‘구별’, ‘차별화’, ‘탁월화’, ‘변별적 기호’ 등으로 번역되고 있다. 부르디외의 대표 저작 가운데 하나의 제목이기도 한 ‘구별짓기’는 우월한 계급을 특징짓는 변별적 속성의 총체, 그리고 그것이 다른 계급과의 관계 속에서 정교화되고 자연화되는 역동적인 과정 자체를 동시에 가리킨다.


‘장(場, field)’은 위치로 구조화된 공간을 공시적으로 파악하고, 이 위치들의 속성을 사회공간 속에서의 위치에 종속시키며 따라서 그 위치의 점유자의 속성과는 상대적으로 독립적으로 분석된다. 장은 정치의 장, 종교의 장, 학문의 장, 예술의 장 등으로 다원화되지만, 그 장들이 갖는 일반적 법칙은 추출할 수 있다. 각각의 장은 고유한 투쟁목표와 이해관심들로 구성되며, 따라서 한 장의 투쟁목표와 이해관심은 다른 장으로 환원될 수 없다. 이 구조는 그것의 변동을 노리는 전략의 원칙에 따르게 되기 때문에 항상 게임의 논리가 나타나며, 여기서 정당한 폭력(특수한 권위)의 독점을 목표로 두 진영이 나눠진다. 즉 특수한 자본의 분배구조를 보존(정통의 방어)하려는 전략과 그것을 전복(이단)하려는 전략이 그것이다.


‘아비투스(habitus)’를 부르디외는 사회구조(즉 장)와 개인의 행위(즉 실천) 사이의 인식론적 단절을 극복하는 매개적 메커니즘으로서 정의한다. 우리말로 굳이 번역하자면 ‘실천감각’ 정도로 할 수 있으나 ‘습관’이나 ‘습성’과는 구별된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습관’은 반복적이며 기계적이고 자동적이며 생산적이기보다 재생산적인데 반해서, 아비투스는 고도로 ‘생성적’이어서 스스로 변동을 겪으면서 조건화의 객관적 논리를 생산하는 경향이 있다. 아비투스는 역사에 의해 생산되는 창안의 원칙이면서 역사로부터 상대적으로 벗어난다.


‘자본(capital)’을 부르디외는 “희소재 및 그와 관련된 이윤을 전유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한다. 이러한 자본은 사회공간에서 희소재들의 전유를 둘러싸고 행위자들이 벌이는 투쟁에 동원된다. 부르디외는 자본의 크게 4가지를 꼽는다. 첫째, 경제자본으로 여러 생산요소들(토지, 공장, 노동력 등)과 각종 재화(수입, 소유물 등)으로 구성된다. 둘째, 문화자본이다. 문화자본은 가족에 의해 전수되거나 교육체계에 의해 생산되는데 대게 세 가지 상태로 존재한다. 셋째, 사회(관계)자본은 한 개인 혹은 집단이 동원하고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인 연줄과 관계망으로 정의된다. 넷째는 상징자본이다. 부르디외는 어떤 유형의 자본이든 실질적이거나 명시적인 인정을 얻게 되면, 상징자본으로 기능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상징권력(pouvoir symbolique)은 상대에게서 인정을 얻을 수 있는 권력, 인정을 얻게 만드는 권력을 뜻한다. 달리 말하면 정치, 경제 등의 유형 권력이 그 자의성과 폭력성을 상대로 하여금 오인하게 만들 수 있는 힘으로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공인하거나 신성화한다. 상징권력은 상징자본을 바탕으로 물리력이 아닌, 지식과 의미의 수준에서 행사된다. 때문에 상징권력은 사람들로 하여금 특정한 것을 보고 믿게 만들며 세계에 대한 특수한 전망을 갖게 한다. 나아가 그들을 동원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상징폭력(violence symbolique)은 그 폭력의 자의성을 알지 못하는 혹은 오인하는 사람들의 ‘공모’에 의해서 행사되는, 비가시적 폭력을 말한다. 예컨대, 민중계급의 구성원은 ‘촌스러운’ 자신의 취향을 ‘부끄럽게’ 여긴다면 그 이유는 자신의 취향이 ‘촌스럽다고’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촌스럽다는 구분 자체가 지극히 자의적이다. 이는 현재의 부르주아지 중심의 가치기준이 사회 안에서 지배적이며 이를 당연한 것으로 다른 계급들이 내면화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상징폭력은 지배구조가 의식적인 성찰이나 의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지각과 인지영역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는 개념이다.


재생산은 경제학의 핵심개념 가운데 하나다. 매번의 생산은 그 전에 이루어진 생산이 갱신, 반복되는 현상이며 따라서 모두 재생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부르디외는 많은 연구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문화적, 사회적 재생산 과정에서 교육제도와 교육커뮤니케이션이 수행하는 특수한 역할을 분석했다. 이때의 문화적 재생산이란 “문화적 자의성의 재생산”을, 사회적 재생산이란 “계급 간 세력관계 구조의 재생산”을 각각 가리킨다. 그에 따르면 학교교육은 지식과 정보를 전수하는 중립적 활동이 아니다. 학업성취도는 개개인에게 비공식적으로 상속되고 체화되는 문화자본의 불균등한 사회적 배분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 끝없이 비판하고 비판받았던 삶
부르디외는 그 동안 사회불평등 연구에서 간과해 왔던 일상문화의 중요성에 대해 새롭게 눈을 돌렸다. 그가 제안하는 아비투스, 장, 구별짓기 등의 개념은 일상문화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데 중요한 이론적 자원을 제공하고 있다. 아비투스 개념은 일상적 실천의 ‘무의식성’과 구조의 재생산을, 장의 개념은 일상적 실천의 다양성과 사회 구조의 복합성 등을 포착하는데 유용한 개념적 도구임에 틀림없다.


물론 한계로 지적되는 부분들도 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마치 정교한 이론인양 사람들은 현혹시킨다는 비판부터 언론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정작 자신은 적절하게 언론을 이용한다는 등 다양하다.

 
부르디외는 늘 양심 있는 지식인들은 언론의 폭력적인 형태를 견디지 못하고 상아탑 속에 매몰돼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그러한 지식인들이 올바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 줄 수 있기를 원했다. 언론에 기생하며 권력의 하수인의 역할을 하고 있는 지식인에 대해서는 혹독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여전한 논란에도 그의 사회, 정치, 문화 등에 끼친 영향력은 부인할 수 없으며 참여지식인으로서의 그의 역할 또한 높이 평가돼야 한다. 그는 경제와 문화 등 각 분야에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현상을 비판 하면서 이에 저항하기 위한 범세계적인 지식인 연대를 주장했다. 그는 다른 학자들로부터 ‘사회학적 테러’를 가하고 있는 학자라는 비난을 들어가면서도 적극적인 현실 참여와 사회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때문에 부르디외는 프랑스에서 실존주의 사상가 사르트르 이후의 최고의 참여지식인이란 찬사를 아울러 받고 있다.

이영규 칼럼니스트 f-president@hanmail.net


※ 참고 문헌
‘부르디외, 커뮤니케이션을 말하다’, 스테판 올리브지, 커뮤니케이션북스, 2007.
‘구별짓기(1~2)’, 삐에르 부르디외, 새물결, 2005.
‘문화와 권력 부르디외 사회학의 이해’, 현택수 외, 나남출판, 1998.
‘예술의 규칙: 문학 장의 기원과 구조’, 부르디외, 동문선, 1999.
‘문화사회를 위하여’, 심광현 ․ 이동연 편저, 문화과학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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