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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NU 교양 100선 읽기프로젝트 ⑪황석영 『삼포 가는 길』
멀리, 끝없이 몸으로 밀고 나가는 삶과 문학
[1479호] 2018년 05월 09일 (수) 15:05:37 전북대신문 press@jbnu.ac.kr

   

▲읽기와 쓰기의 즐거움과 고통에 대하여
우리는 왜 책을 읽는 것일까? 책 읽기는 과연 즐겁고 유익한 것인가?
책장을 넘기다 보면 문득 이런 질문이 생길 때가 있다, 친구를 만나거나 여행을 가거나 혼자서 명상에 잠기는 것보다 책을 읽는 것이 정말 좋은 걸일까?


글쓰기를 업으로 삼다 보니 이런 질문은 내 스스로에게 이렇게 돌아오기도 한다. 산과 들을 헤매며 몸으로 글을 쓰고 바람이 전하는 풍경을 마음에 새기는 것에 비하면 우리들의 글쓰기는 얼마나 졸렬한가!


이런 점에서, 책을 읽는 일이나 글을 쓰는 일이 마냥 즐겁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큰 절이라고 올리고 싶다.


책을 읽는 일을 통해 우리는 지식을 얻고, 무언가를 새롭게 배우는 일의 지난함과 즐거움에 대해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자신이 어떤 책을 읽기를 좋아하는지 알게 된다. 글을 쓰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스스로 길을 찾을 때까지 작가는 언어의 숲을 헤매고 다니며 미로를 헤쳐 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일은 이처럼 지난하고 고통스럽다.


▲삼포는 끊임없이 멀어진다
황석영의 단편 “삼포 가는 길”이 처음 지면에 등장한 게 1973년, 물경 45년 전 작품이다.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황석영은 한국 소설계를 대표하는 최고 작가의 반열에 여전히 서 있었고 그만큼 많은 화제작을 양산하면서 그의 많은 작품이 독자들 앞에서 명멸해 갔지만 이 작품은 여전히 그 광휘를 잃지 않고 있다.
이 작품은 황석영 문학의 출발점과 지향점을 동시에 보여주는 작품인 동시에 해방과 분단, 산업화 시대에 직면한 한국 리얼리즘 문학의 개막작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문학이 한국 사회의 변동상에 대한 문학적 보고라는 일반적 인식이 싹튼 것도 어쩌면 이 작품을 기점으로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950년대 전후 실존문학의 혼란스러운 틈바구니를 빠져나온 한국 문학은 1960년대 이른바 ‘한글 세대’의 등장으로 새롭게 문학 판을 짜기 시작했고 1970년대 이후 작가들은 한국 사회에 미증유의 거대한 변화가 밀어닥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기 시작한다.


본격적인 산업화, 도시화가 이뤄지면서 급격한 농촌 인구의 감소와 인구 이동 그리고 도시 빈민의 등장 등이 연이어진다. 아마도 단군 이래 거의 변화가 없었을 온돌, 두레, 농악, 마실길 등으로 상징되는 농촌 공동체적 삶의 양식은 순식간에 해체되고 산동네, 뒷골목, 뜨내기, 귀성 행렬 등의 낯선 풍경이 흐린 도시의 상공 위에 스모그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이에 대한 시대적 변화에 대한 문학적 보고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나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이문구의 “관촌 수필” 등으로도 형상화된다. 평자에 따라 이 작품들에 대한 각기 다른 가치 평가와 의미 부여가 있을 수 있지만, “삼포 가는 길”은 당대의 스산한 변화상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포착한 르포르타주 문학의 전범이라 할 수 있다.


근대화 이전 ‘길손’이란 목적지가 분명한 여행객들이었다. 한양 과거장을 향하든 경조사가 있는 친지 집을 찾든 혹은 유람을 가든 이들은 결국 다시 출발지로 돌아가는 잠시잠깐의 과객(過客)들이었다. 하지만, 산업화가 가져온 거대한 인구 이동의 격랑 속에 우리 사회에는 ‘정처 없는 뜨내기’들이 양산되기 시작한다. 고향의 상실 그리고 어디도 등 기댈 곳 없는 유랑(流浪) 생활은 종착지도 없고 또 어디로 자신이 흘러가는지도 알 수 없게 만든다. 그야말로 시대의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쭉정이 같은 삶이다. 끝없이 이어진 길은 이제 그들의 삶의 터전이 되고 만다.


길 위에서 만난 세 사람, 노영달과 정씨와 백화는 길 위에서 만난 사이이며 길 위에서 헤어져야 하는 사람들이다. 세 사람 모두 자신들의 앞길에 어떤 일이, 어떤 시간이, 어떤 사람이 서 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길은, 시대는, 그들의 인생은 이처럼 하염없이 춥고 쓸쓸하다. 겨울이고, 눈보라가 치고 봄이 온다는 소식은 기약이 없다. 기실 정씨가 돌아가고자 하는 삼포 역시 그에게는 이제 고향이 아닌 객지, 다가서면 그만큼 훌쩍 멀어지는 모래 사막의 신기루 같은 곳이다.


고향으로부터,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나온 그들은 모두 파편(破片)이다. 파편과 파편이 만나면 깨진 모서리끼리 서로 아귀가 맞지 않아 고통스럽다. 파편에 파편을 비추면 금간 자국들이 서로의 면상을 맹렬히 할퀴기 시작한다.


▲책 속의 책, 길 밖의 길
문학은 당대의 현실을 반영한다는 관점에서 살펴보면, 깨져 금간 세상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작가는 마땅히 스스로 파편이 되어 길 위에서 떠돌아야 한다. 실제로 작가 황석영은 당시에도 전국을 배회하고 있었고 이후에는 남과 북 사이, 조국과 이방 사이에서 끊임없이 유랑하는 삶을 자초하고 감내했다. 그는 자신의 삶 앞에서도 때때로 손님이었다. 급류에 뿌리 뽑혀 떠내려가는 우리들의 시대, 우리들의 삶, 우리들의 문화에 대해 그는 함께 쓸려가면서 이야기하는 작가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대개 그의 앞에는 수난과 모욕이 도사리고 있었다.


작가 황석영의 문필 활동을 하기 시작한 지 이미 반백년이 훌쩍 지났다. 변경에서 변경으로, 그가 길 위에 자신의 생애를 던져 남긴 문학적 발자취는 이제 그 자체로 한국문학사의 새로운 텍스트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후배들 입장에서는 황석영이 몸으로 그려낸 이 같은 족적이 경이로운 반면 때로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자신의 삶 전체를 걸고 문학에 투신하는 이에게 갈채를 보내긴 쉽지만 자신이 그와 같이 뛰어들긴 망설여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삼포 가는 길”은 한국 사실주의 문학의 금자탑이라는 평가와 또 다르게 후배 작가 혹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그 각오와 의지를 묻는 시금석이란 또 하나의 의미를 쟁취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책 속의 책, 글 밖의 글… “삼포 가는 길”을 읽는 일은 이처럼 나 스스로를 읽는 일이다. 나는 지금 어디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김병용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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